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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칼럼 – ‘지구의 날’이 뭐꼬?

‘지구의 날’이 뭐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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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크리스천위클리 발행인)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아담과 하와가 살던 복락원도 지구, 가인과 아벨이 살던 실낙원도 지구, 그리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란 이름으로 세계종교의 두 지류가 갈라지는 아브라함의 아들 야곱과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더불어 살고 있는 땅도 바로 지구다. 이번 주 딜로이트란 회계법인이 조사해서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1위 노르웨이, 2위 스웬덴, 3위 스위스도 지구에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알려진 방글라데시, 아프카니스탄, 부룬디도 지구에 있다. 아리조나 그랜드 캐년 사우스림에서 노스림을 올려다 보며 느끼는 것은 그런 지구도 사실은 오랜 고난과 변화의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변화무쌍한 격변과 충돌의 세월을 지나 장엄하게 우리 앞에 서 있는 지구… 때론 경외감을 느끼게 해준다. 옐로우스톤 팍에 가면 1면여 개의 가이저와 온천이 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수와 규칙적으로 하늘높이 치솟는 가이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차마 폭발할 수 없어 참고 견디는 지구의 절제심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근처의 베수비오 산을 바라다보면 분노한 지구가 한 순간에 화산재로 덮어버린 환락의 도시 폼페이를 생각나게 한다. 지구는 그렇게 인간의 문명을 한순간에 덮어버릴 수 있는 무서운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엄하고 분노하는 지구보다는 자상한 어머니와 같은 게 지구의 모습이다. 가난한자들의 눈물을 쓸어내리며 유유히 흐르는 메콩강을 품고 있는 것도 지구다. 원시를 고집하며 문명을 거부하는 이들의 따뜻한 젖줄이 되어 흐르는 아마존 강도 품고 있다. 히말라야는 만년설을 간직하며 산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끝없는 꿈을 심어주고 있는 ‘지구의 지붕’이다. 무엇보다도 넓은 5대양을 품어 수많은 먹거리를 제공하며 역사의 진로를 안내해 왔다. 어디 그 뿐이랴! 쌓이고 쌓이는 더럽고 썩어가는 쓰레기를 가슴에 품은 뒤 더러운 것 대신에 오히려 지하수가 나게 하고 석유가 흐르게 하고 화석연료를 공급하여 인류 역사의 불을 밝혀온 것이 지구가 아닌가? 그런 지구가 오염과 온난화, 사람들의 마구잡이 착취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돈만 보이는 자본지상주의 앞에 지구의 운명은 그저 시든 꽃처럼 점점 생명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그래서 지구촌에는 생태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그린피스(Green Peace)가 있다. 핵실험과 고래잡이 반대를 내걸고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자연보호 단체가 되었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이란 기구도 있다. 지구상의 동물, 꽃, 물, 토양, 자연자원 보호를 목적으로 창립된 비영리기구다. ‘지구의 벗(FOE, Friends of the Earth)’란 기관도 있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고 산림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기구다. 이런 3대 자연보호 기구들의 활동으로 과연 지구를 살려 낼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다.

 

그럼 우리가 지키는 지구의 날(Earth Day)이 있다. 본래 미국에서 시작된 운동이지만 지금은 192개국이 참여하여 그야말로 범지구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날이다. 1969년 중가주 샌타바바라 앞바다에서 유니온 정유 회사의 대형 기름 유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같은 해 존 맥코넬(John McConnell)이란 사람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유네스코 회의에서 최초로 지구의 날을 제안했다. 일년이 지나 게이로드 넬슨(Gaylord Nelson) 위스콘신 상원의원과 당시 하바드 대학에 재학중이던 데니스 헤인즈(Denis Haynes)란 학생이 중심이 되어 1970년 4월 22일에 처음으로 지구의 날 행사가 미국에서 열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구는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이란 인식의 변화가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2009년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4월 22일을 ‘어머니 지구의 날(International Mother Earth Day)’로 공식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유엔까지 들고 일어났으니 일년에 한번 이 지구의 날 만 딸랑 지키고 지나가면 신음하는 지구를 살려낼 수 있을까? 그것 역시 어림없는 소리다.

 

교회가 나서야 한다. 교회는 365일을 지구의 날로 지키는 자연보호의 정예부대가 되어야 한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지구의 관리자’란 영적 닉네임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물로 받으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도 함께 받은 우리는 당연히 이 생육과 번성의 터전을 잘 관리하고 보호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환경의 청지기적 사명이다. 인간 영혼의 구원은 하나님 전결사항이지만 지구 구원은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 그리스도인이 먼저 적게 소비하고 낭비를 줄이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지금 캘리포니아에 밀어닥친 위협적인 가뭄 때문에 주 전역에서 물 사용량을 25% 이상 줄여야 한다는 주지사 행정명령이 떨어졌다. 지하수마저 말라버리고 있다니 정말 소비지상주의, 물질지상주의에 대한 지구의 반격이 시작되는 것 같아 두려워진다. 이런 판국에 지구의 날이 언제이고 무엇을 위한 날인지도 모르고 지나친다면 환경의 청지기는 고사하고 부끄럽고 창피한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