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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이민 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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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10.14 :   도산 안창호와 부인 이혜련 유학차 샌프란시스코 도착

11.16 :  대한제국 정부, 이민 엄부를 전담하는 수민원(綏民院) 설립 궁내부 관제로 수민원 직제 선포. 민영환을 총재로 임명

12.22 :  인천(당시 제물포)에서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이민자 121명 떠남. 일본 나가사끼에서 미국 상선 S.S. Gaelic호로 갈아타고 호놀룰루로 향함

 

 

1903년

  1. 13  :  첫한인이민자 102명 호놀룰루 도착
  2. 13 :  제2차한인이민자 63명 캅틱호로 호놀룰루 도착
  3. 9 :   제3차한인 이민자 72명 코리아호로 호놀룰루 도착
  4. 30  :  니흔마루(日本丸) 선편으로한인이민자 113명 호놀룰루 도착
  5. 9 :   파할라통신“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민자들이 성실하게 일한다”고 칭찬
  6. 4  :  하와이몽골리아사탕수수 농장에서 김이제 전도사 인도로 예배 시작

8.7 :  호놀룰루에서 홍승하, 윤병구, 문홍식, 박윤섭, 임치성, 안정수 등이 정치적 단체인 신민회 조직

9.22 :   샌프란시스코 동포 9인이 친목회 조직. 회장 도산 안창호, 회원  박성겸, 이대위, 김성무, 위영민, 박영순, 홍종술, 김병모, 정동삼, 당시 샌프란시스코에는 학생, 인삼장사 등 한인20명이 거주

11.10 :  호놀룰루의 안정수 등 한인 전도회 시작. 홍승하 목사 예배 인도로 제일한인감리교회 창립

12.5 :  하와이 이민국은 박윤섭을 이민 통역 겸 검사원으로 임명

 

1904년

2.22 :  대한제국, 주미한국공사 조민회 소환

3.11 :  감리교 은퇴 선교사 Florence Sherman 여사 남감리교 선교부 보조로 남가주대학 인근 매그놀리아가에 한인 기숙사 세우고 영어, 성경교육, 예배인도.  현 나성한인연합감리교회 전신

6.1 :  캅틱호 선편으로 한국인 노동이민자 130명 호놀룰루 도착

6.4 :  샌프란시스코에 대지진

7.8 :  몽골리아호로 한국인 노동이민자 176명 호놀룰루 도착

8.22 :  캅틱호 선편으로 한인 154명 도착

9.26 :  몽골리아 선편으로 한인 152명 호놀룰루 도착

11.9 :  이승만 사이베리아 선편으로 호놀룰루 도착

12.6 :  이승만 죠지 워싱턴대학 입학

 

1905년

2.6 :  박용만 샌프란시스코 도착

2.10 :  호놀룰루 센인트 앤드류스 교회당에서 한인성공회 예배

2.27 :  하와이의 문홍석 한성여관에서 대륙간 철도노동자 모집

3.6 :  멕시코 이민선 제물포 출발. 남자 802명, 아이 231명, 모두 1033명

3.31 :  만추리아 선편으로 한인 노동자 278명 호놀룰루 도착

4.5 :  샌프란시스코 한인들 공립협회 창립.  목적은 애국과 애족, 동족 상부 상조와 한인 구호 등이며 회장은 도산 안창호.

4.5 :  한국 정부 일본의 압력으로 하와이 이민 금지

4.13 :  코리아호 선편으로 한인노동자 191명 호놀룰루 도착

4.14 :  미국 정부는 알렌 주한공사 소환으로 E.B. 모갠을 새 주한공사로 임명

4.30 :  오아후의 에와농장에서 한인예배당 헌당식 거행: 호놀룰루 와드맨 목사 헌당예배 사회, 윤병구 목사 농장주에게 감사 인사. 이날 참석자 모두 110명, 미주에서 최초로 건축한 한인예배당

5.15 :  한인 멕시코 이민자 1,033명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 지방 도착, 4년간 계약이민으로 어저귀 농장에서 일함.

7.9 :  호놀룰루 누아누 145에 한인감리교회 예배당 설립. 와드맨 목사와 윤병구 목사 예배 인도

7.17 :  하와이 거주 한인 동포수 7천명을 넘어섬. 한인사회는 윤병구 목사를 한인대표로 선정하고 아일(러시아와 일본) 강화 회의에 보냄

8.13 :  오아후섬 와이파후농장에서 한인예배당 헌당식 거행. 와드맨 목사, 윤병구 목사, 한국 선교사 스웨러 참서, 모두 5개 한인예배당 에와, 가후쿠, 와일루아, 호놀룰루에 설립

8.14 :  호놀룰루 교회에서 하인 에버트청년회 한국선교사 스웨러 목사 초청, 한국정황 보고

8.24  :  호놀룰루, 와이파후, 에와, 와일루아, 가후쿠 각 지방 한인들 와드맨 목사 제의로 한인상조회 조직.  회장 송헌주, 부회장 민찬호, 박윤섭, 서기 김성권, 재무  이지성

9.8 :  만추리아 선편으로 한국 외무협판 윤치호 호놀룰루 도착, 멕시코 이주 한인동포 예방 목적이었으나 하와이 각 지방의 한인들만 방문하고 귀국

9.18 :  한국에 나가있는 노블 선교사 호놀룰루 도착. 하와이 각 지방 한인교회 방문

10.8 :  샌프란시스코 한인들 한인전도회 조직. 문경호 전도사 인도로 예배, 후에 상항한인감리교회가 됨.

10.27 :  샌프란시스코 퍼시픽가 938호에 공립협회 회관 설립, 건관식 거행

11.4 :  몽골리아 선편으로 한인동포 22명 샌프란시스코 도착

11.13 :  한국정부에 고용되어 일하던 헐버트씨 샌프란시스코 도착. 공립회관 방문

11.17 : 을사보호조약 체결

11.22 :  샌프란시스코 공립협회 공립신보 창간, 대표 송석준

11.25 :  미국정부, 서울 공사관 폐쇠

11.30 :  대한제국 시종무관 충정공 민영환 자결

12.3 :  미국 공사 모갠 공사관 폐쇠 후 귀국, 불란서, 영국 공사관 폐쇠.

12.5 :  만추리아 선편으로 호놀룰루에서 한인 8명, 샌프란시스코 도착

12.9 :  남가주 파사디나에서 대동교육회 설립. 회장에 김우제 선출.  1907년 1월 대동보국회로 명칭 바꿈. 중앙회는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중앙회장에 이병호, 총무에 장경 선출.

12.16 :  워싱턴 DC 한국 주미공사관 폐쇄

12.17 :  호놀룰루에서 한인 22명 샌프란시스코 도착

12.26 :  남가주 래드랜드지방에 공립협회 지부 설립

12.28 :  호놀룰루 미국인 교회에서 제1회 감리교 연회 개최. 한인교회 각 지방 목사 임명 : 호놀룰루 민찬호, 에와 김영식, 와이파후 김이제, 와일루아 가후쿠 임정수, 스판엑클스빌 신판석, 리휘 하나말투 현순, 엘리엘리 골로아 이경직, 힐로올라 홍치범, 고할라 최진태, 교회월보 주필 윤병구, 교회월보 발행인 송헌주, 야학교 및 복음화 감찰 이지성

 

 

1906년

1.9 :  알라메다 선편에 한인 5인, 12일 사이베리아 선편에 4인 호놀룰루로부터 샌프란시스코 도착

2.6 :  1882년 5월22일 한미수호통상조약 체결후 워싱턴DC에 한국 공사관을 설치하고 20여년을 외교공관으로 활동해왔는데 아일강화조약 후 공사관을 철폐, 김윤정 대리공사 샌프란시스코에서 몽골리아 선편으로 귀국

2.12 :  호놀룰루 수산나 웨슬레홈 개원식. 한인과 일인의 고아, 의지할데 없는 부인 수양

3.16 :  로스앤젤레스에 공립협회 지방회 설립

3.29 :  만추리아 선편으로호놀룰루로부터 한인 22인 샌프란시스코 도착

4.6 :  호놀룰루 과학구락부원 더스틴이 하와이 도착. 이민자 발표 (1852-1905년) 한인 6,908명, 중국인 44,494명, 일본인 111,137명, 포루투갈인 11,440명

4.12 :  소노마 선편으로 한인 19명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 도착

4.18 :  오전 5시 15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사망 402명, 공립협회 회관 화재, 오클랜드로 한인 40인 피신, 하와이 에와 친목회장 정원명 지진의연금 보냄.  서울의 대한매일신보사에서 의연금 592달러, 고종황제 1,900달러 하사금, 공립협회 오클랜드 다시 설립.

5.4 :  호놀룰루 한인감리교회 월보 국문활판으로 인쇄 시작, 하와이의 26개 한인교회에 보냄.

5.10 :   LA 교포들이 벙커힐에 집을 얻어 장로교 미션 오픈. 현재의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전신.

5.11 : 로스앤젤레스에서 공립협회 총회 개최

총회장 송석준, 서기 정재관, 학무 안창호 선출,

5.29 :  한인 70명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 도착.

7월초 :  양주삼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에 부임.

8.2 :  한인 52인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 도착

8.11 :  호놀룰루 한인감리교회 건물과 대지 1만8천달러에 구입, 한인기숙학교와 교회본부로 사용

8.12 :  하와이를 방문중인 한국선교사 조지 하버 존스 목사는 지방 판사의 “하와이 온 외국 노동자가 무식하고 빈궁하고 예의가 없다”고 한 말을 사과하라고 공개질의서를 보냄.

8.13 : 존스 목사 한인감리교회에서 한인교회의 발전을 칭찬

9.2 :  하와이 감리교회  호놀룰루에 한인기숙학교 설립

9.17 :  한인 20인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11.11 :  가와이섬 리휘농장에서 한인교회당 봉헌식 거행

11.28 :  11월 12월  호놀룰루에서 한인 220명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12월 초 :  솔트레이크 부근 철도 부설공사에 종사하는 한인을 위해 박제순 여관 설립

12.6 :  1905년 세워진 상항한인감리교회는 처음 문경호가 예배를 인도했고, 다음은 방화중 인도, 새롭게 남감리교회 선교부에서 다시 관리하면서 양주삼을 전도사로 임명.

 

1907년

1.1 :  호놀룰루 예배당에서 한인 에버트청년대회 개최. 모두 1백여명 참석, 한국의 지방전도를 위해 1백 62달러 모음.

1.2 :   호놀룰루에서 한인 16인 샌프란시스코 도착

1.8 :  공립협회 학무 안창호 귀국

2.4 :  한인 22인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 도착

2.16 :  하와이와 캐나다, 그리고 멕시코 등지에서 미국으로 오는 동양이민 금지법 상하원 통과, 3월14일 대통령 서명.

4.26 :  공립신보 제2권 제1호 국문활자로 발간

5.10 :  공립협회 총회장 송석준 서거

7.19 :  고종황제 퇴위, 순종황제 즉위

7월 :  고종 퇴위후 국권회복 위해 각 단체 통합, 미주에서는 상항공립협회와 대동보국회, 그리고 뉴욕에는 공제회, 시애틀에는 동맹 신흥회 설립

8.1 :  헤이그 세계 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한국 사절 이상설, 이위종 뉴욕 도착.

9.2 :  하와이 24개 단체 통합 후 한인 합성협회 조직 초대회장 임정수

9.24 :  샌프란시스코 대동보국회 총무 장경 상해 도착. 대동보국회 지회 설립.

10.3 :  샌프란시스코 대동보국회 대동공보 창간, 주필 최영만, 사장 문양목

10.17 :  호놀룰루 합성협회 합성신보 창간 국문판 인쇄, 김성권 집필

11.17 :  알라스카 어장에서 일하던 한인 10명 샌프란시스코 귀환

 

1908년

1.26 :  샌프란시스코 대동보국회 제3회 대의원회 소집, 중앙회장 문양목 퇴임, 새 중앙회장 겸 대동공보 주필 백일규 선임

3.21 :  한국 외교 고문 D. W. Stevens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 인터뷰에서 “일인의 한국 보호는 한국에 유익한 일이 많다”고 말함. 문양목, 최정익, 정재관, 이학현 페어몬트호텔로 찾아가 정정 및 사과 요구

3.23 :  오전 9시30분 Stevens가 워싱턴DC로 가려고 샌프란시스코 패리정거장에 나왔을 때 장인환, 전명운 의사가 저격

3.25 :  밤 11시 10분 Stevens 사망. (6월 27일 전명운의사는 석방, 1909년 1월2일 장인환의사는 25년형을 받고 샌퀸틴 감옥에 수감. 1919년 1월10일 가석방)

4.8 :  김길연, 백락범, 한인 50인 모집하여 알라스카 어장에 감

4.9 :  샌프란시스코 대동공보 25호 발행 후 경비난으로 정간

4.27 :  감리교회 동양감독 해리스 “일본이 한국을 보호하는 것은 천명”이라고 말해 한인들 항의

5.23 :  샌파란시스코에서 김밀리사 등 한국부인회 조직

6.24 :  이승만, 하버드대학 문학사 학위 받음.

7.10 :  이승만, 콜로라도주 덴버 애국동지대표자 대회 의장 피선 활약

7.13 :  박용만 콜로라도주 덴버시 애국동포대표회 소집, 독립운동 방책 토의

9월 초 :  호놀룰루 천흥협회 천흥신보 창간, 박상하 집필

9.19 :  샌프란시스코 공립회관에서 알라스카 어장에서 일하고 온 한인 환영회 개최

12.21 :  샌프란시스코 한인남감리교회 월간 대동보 창간, 주필 양주삼 목사

12.26 :  공립신보 주필 정재관 사임, 최정익 맡음

 

1909년

1.7 :  샌프란시스코 공립협회 회의 소집. 총회장 정재관, 부회장 최정익 선임.

1.20 :  현순, 하와이 유람기 발행

2.1 :  미주 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는 두 단체가 모여 국민회로 새로 출발하기로 하고 발기인 선임. 하와이 대표는 고석주, 김성권, 민찬호, 안원규, 이내수, 강영소, 한재명

미주는 최정익, 이대위, 강영대, 안석중, 황사용, 이경의,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에서 국민회 창립 축하식 개최, 하와이 국민회 총회장 정원명 선출

합성신보 신한국보로 개칭, 홍종표 주필, 미주 국민회 총회장 정재관 선출

2.10 :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 창간, 주필 최정익

2.19 :  한국의 송병준 한국의 일본 합방 찬성에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한인들 항의 전문

4.22 :  이상설, 정재관 국민회 사명을 갖고 올라디보스톡으로 출발

5.5 :  샌프란시스코 국민회관 태동실업주식회사 조직, 자본금은 2만5천달러 한주의 가격 25달러

5.9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 지방에 동포 305인 국민회 설립, 회장 이근영

5.12 :  멕시코 이민 4년 노동계약 만료되므로 4월3일 미주 국민회 총회 황사용, 방화중 위문차 파견

6월초 :  박용만, 박처후, 임동식, 정한경 네브라스카주 허가 받고 커디농장에 한인소년병학교 설립. 청년학생 모집, 군사훈련

7.14 :  신한민보 최정익 주필 사임. 강영대 편집자 임명

10.26 :  안중근의사 하르빈에서 이등박문 저격 사살

12월초 :  샌프란시스코 한인감리교회 양주삼 목사 사임, 윤병구 목사 부임

12.18 :  리들리에서 국민회 대의원회 소집, 총회장 황사용 선임, 하와이 국민회 이내수 총회장 선임

 

 

1910년

1.30 :  한국 기독청년회 대표 윤치호 호놀룰루 경유 샌프란시스코 도착. 5월19일 워싱턴 DC 세계일주학교 대회 한국대표로 참석

1.31 :  콜로라도주 프리매로 석탄광 개스 폭팔, 100여명이 사망. 한인동포 9명 숨져

2.10 :  로스앤젤레스 매그놀리아가 1620호 대동서관 문학사 이승만이 쓴 독립정신 간행

2.10 :  샌프란시스코 국민회와 대동보국회 대한인국민회로 통합

3.5 :  호놀룰루 신한국보 주필 홍종표 사임, 노재호 맡음

3.7 :  안중근의사 변호비용 미주와 하와이에서 모금 두차례에 걸쳐 1,500달러 블라디보스톡으로 송금.

3.21 :  런던에 체류하던 이항우, 샌프란시스코 도착 신한민조 영문판 책임

3.25 :  로스앤젤레스에서 오운과 동지들 권업동맹단 회사 설립, 논업과 상업 시도 5-6년후 실패

5.10 :  대동보국회 국민회에 참가, 명칭을 대한인국민회로 고침. 중앙총회장은 최정익

7.12 :  만추리아 선편으로 샌프란시스코 한미무역회사 총무 최영만 한국화물 수입 위해 귀국

7.18 :  이승만,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 학위 수여

8.10 :  경비난으로 신한민보 9월21일까지 6주간 발행 중단

8월초 : 레들랜드에 거주하는 송석중 캘리포니아주 각 처에서 사는 한인동포들을 방문 모금활동 전개

8.29 :  한일합방, 윤희황제 퇴임, 샌프란시스코와 호놀룰루 동포들 공동회 조직, 합병반대 항의서 작성, 한국 황제와 일본 황제, 그리고 구미열강 정부에 보냄.

9.3 :  이승만 박사 유럽 경유 10월10일 서울 도착

9.10 :  북미 국민회 총회장 황사용 호놀룰루 도착.  각 군도와 지방 순방

10.1 :  샌프란시스코 국민회관 건물을 페리가 232호에 3천5백달러로 구입, 신한민보 건물로 함께 사용.

11.17 :  멕시코 메리다 지방에서 이근영, 양귀선 등 숭무학교 설립

11.28 :  사진결혼 제1호 최사라 호놀룰루에 도착, 1924년 이전까지 모두 1,100명 하와이 본토에 도착

12.2 :  하와이 국민회 총회장 이내수 사진결혼, 주례 민찬호 목사

12.22 :  업랜드에서 북미 국민대의원회 개최, 미주 국민회 총회장 문양목, 하와이 국민회 총회장 정칠래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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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1월초 :  하와이 국민회 총회 멕시코 한인 하와이로 이주 시키기 위한 재정 마련 시작

1.25 :  샌피터스버그에서 주 러시아공사 이범진 망국의 치욕을 씻기 위해 자결.  그의 재산 원동과 미주 한인단체에 분배. 미주 국민회에 3천달러 기부

2.1 :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 윤병구 목사 사임, 스탠포드대학에서 공부하던 이대위 선임

2월초 :  네브라스카주 헤스팅스 지방에서 한인소년병학교 감독 박용만 신한민보 주필 맡음.

3.10 :  하와이 한인학교 민찬호 목사 남가주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LA 도착. 호놀룰루 한인교회와 기숙학교 감독사무 홍치범 목사 맡음.

3.29 :  국민회 중앙총회장에 최정익, 부회장은 한재명 선임.

6.10 :  하와이 국민회 지방총회 초등국어 교과서 상하권 편찬

9.3 :  한국에 체류하던 안창호 뉴욕 경유 샌프란시스코 귀환

9.11 : 멕시코 동포의 미주 이주를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온 이근영, 김동현, 이병언, 김명수 이민국의 허가를 받지못해 다시 돌아감. 멕시코 동포 이주문제 정지됨

10.14 :  캘리포니아 클레아몬트 한인학생양성소 9월 준공 낙성식 거행

11.1 : 허승원, 이순기 합작 스탁톤에 잡화상점 설립

11.22 :  리버사이드에서 국민대의원회 소집, 샌프란시스코 국민지방 총회 로스앤젤레스로 이전 결의. 총회장 강명화, 하와이는 정칠래 총회장 재선

 

1912년

1.29 :  안창호, 김인수의 발기로 로스앤젤레스에서 북미실업주식회사 설립. 제1차 세계대전 때 벼농사로 큰 이익. 1929년 4월21일까지 사업 계속

8.14 :  이승만 박사, 네브라스카주 헤스팅스 박용만 방문. 소년병학교 학생들 격려, 앞으로의 진로 합의

9.16 :  네브라스카주 헤스팅스지방 박용만의 한인소년병학교 졸업식 거행. 졸업생 13명

11.18 : 샌프란시스코 국민회관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개최, 중앙총회장에 도산 안창호 추대. 북미지방총회, 하와이지방총회, 시베리아지방총회, 만주지방총회로 중앙총회 결성

11.30 :  박용만 호놀룰루 신한민보 주필 취임

12.15 :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국민대의원회 북미국민총회장 정원도 선임. 하와이는 박상하를 선출

 

1913년

3.4 :  태프트 대통령 퇴임. 우드로 윌슨 대통령 취임

5.13 :  샌프란시스코 페리가 232호 국민회관에서 흥사단 창립. 목적은 인재양성, 단원 7명, 창립위원장 홍언, 이사장 안창호

5.19 :  캘리포니아 주의회 동양인 토지소유권 금지법안 통과 시행

6.4 :  네브라스카 헤스팅스 박용만 학생회 조직, 회장 박처우

6.25 :  남가주 리버사이드 부근 헤멧지방에서 살구농장에 일하러 온 한인들을 백인 노동자들이 집단 배척, 이대위 국민회 총회장 미국무장관에 항의전문 보냄

8.22 :  중가주 다뉴바지방의 동포 수백인이 포도따는 계절에 민찬호 목사 1주일간 부흥회 개최

9.2 :  호놀룰루 한인기술학교 교장 이승만 부임, 명칭 중앙학원으로 변경

9.20 :  이승만, 하와이에서 태평양잡지 창간

 

1914년

1.1  :  하와이 국민회 총회장 김종학 선임

4월초 :  북만주 서간도에 사는 동포들 흉년으로 어려움, 국민회 의연금 모아 6백달러 보냄

6.5 :  오클랜드 연합감리교회 창립

6.25 :  샌프란시스코 페리가 국민회관 3천6백92달러에 매도, 다시 마켓가로 구입 이전

7.23 :  신한민보 주필 백일규 취임

7.25 : 김호 미국 도착

7.28 :  제1차대전 발발

7.29 :  이승만 호놀룰루에 한인여자학원 설립

8.30 :  국민보 주필 박용만이 호놀룰루 세운 소년병학교 낙성식 거행, 참석 동포가 500여명, 학생 180명 분열식 거행

10.24 : 이승만 중앙학원 여자기숙사 신축 낙성식 거행

12.9 :  하와이 국민회 총회에서 일반동포의 의연금을 모집하여 호놀룰루 밀러가 1306호에 신회관을 신축하고 낙성식을 거행

12.22 :  새해 북미국민회 총회장 김종학 재선

12.28 :  샌프란시스코 국민회 총회 옥크스트릿 1053호 국민회관 신가옥 구입,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와 국민회관으로 사용, 가격 6천5백달러

 

1915

1.14 :  신한민보 인터타입 활판 사용 결정. 이대위 발행 책임

2월초 :  로스앤젤레스 권업동맹단 루이지아나 뉴올린스항 부근 농토 2백 에이커 구입

3.11 :  북미국민회 총회장 이대위 국문 최신식 인터타입 기계 식자방법 연구, 신한민보 발행

4.22 :  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 부회장 박용만 선임

6.11 :  호놀룰루 국민보 주필 박용만 중앙총회 임원 취임식 참석 샌프란시스코 도착

8.25 : 하와이 국민회 재정사건 발생. 중앙총회장 안창호 조사차 호놀룰루로 떠남.

 

1916

1.2  :  북미 국민회 강영소 선임. 하와이 국민회 총회장 홍한식 선임

2.6 :  송헌주 하와이한인교회 청빙받고 호놀룰루로 떠남

2.22 :  캘리포니아주 맨티카지방 동포 60인 농토 빌려 무농사 지음

2.29 :  최정익과 삼상(蔘商) 서필순 오스트랄리아지역 상업 시찰차 떠남

3.10 :  상해로부터 사진결혼 9명, 신도 학생 34명 샌프란시스코 도착

5.18 :  네바다주 로갠지방 동포 19명 참외농사 토지 292에이커

7.16 :  호놀룰루 한인학생 야구단 클럽 조직

9.28 :  김종림 등 12명 벼농사

9.30 :  상해로부터 남자 16명, 부인 10명 샌프란시스코 도착

11.6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지방 진성학교 설립

교장 서병두, 교감 하상옥, 교사 최정식, 재무 유진태

12.5 :  상해로부터 노백린, 조용하, 조명국 호놀룰루 도착

 

1917년

3.8 :  캘리포니아 맨티카와 스탁톤 양 지방 한인 무사탕농사 3천9백 에이커 지음

4.26 :  캘리포니아 한인 벼농사 점점 확장, 김종림 2천 85에이커 쌀농사, 백미대왕으로 부름

7.19 :  상해로부터 신도학생, 사진결혼 등 22인 샌프란시스코 도착

10.12 :  도산 안창호, 멕시코 한인사회 방문차 샌프란시스코 출발

10.29 :  뉴욕 약소동맹회 회의에 하와이 국민회 박용만 파견

 

1918년

1.8 :  미국 상하양원에서 윌슨대통령 민족자결주의 선포

4.5 :  차이석 1차대전에 미군으로 참전, 후에 ‘Golden Mountain’ 펴냄

7.29 :  이승만 박사 하와이 한인기도교회 설립

9.22 :  캘리포니아 맨티카지방 한인예배당 헌당식 거행

11.11 :  독일 휴전조약 조인. 4년간의 전쟁 끝. 불란서 파리 평화조약 체결 회의

12.23 :  이승만, 정한경, 민찬호 대한인국민회의 파리 강화회의 한인대표 출발

 

1919

1.4 :  샌프란시스코 국민회 중앙총회 임시 국민대회 소집, 각 지방대표 17인 모여 독립문제 논의

1.15 :  호놀룰루 이승만 샌프란시스코 도착, 국민회 임원과 한국 독립문제 등 논의, 워싱턴 DC로 떠남

1.20 :  고종황제 서거

2.20 :  오하이오주 한인학생들 발기로 평화회의 진행, 영문잡지 간행 한국의 참혹한 사정 알림

3.1 :  한국에서 3.1운동 일어남. 3월1일 상해에서 현순 샌프란시스코 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에게 전문으로 알림. 3월9일 받음.

3.3 :  박용만 호놀룰루에서 독립운동 단체, 대조선독립단 설립

3.10 :  미주 각 지역에서 3.1독립만세 소식 접수, 행사를 가짐

3.17 :  샌프란시스코 국민회 중앙총회 김호를 특파위원으로 서부 각 지방에 보내 독립의연금 모집. 63일간 63개 도시를 순방 1만달러 모금.

3.20 :  신한민보 격일간으로 발행. 3.1운동소식 알림. 편집인 이살음

3.24 :  상해 임시정부 김규식 파리강화회의 대표 파견

대통령 손병희, 부통령 박영효, 국무경 이승만, 내무경  안창호

4.1 :  하와이 부녀공동대회 결의 대한부인구제회 설립

4월초 : 국민회 중앙총회 중국인으로부터 의연금 받기로 함. 홍언, 김영훈, 강영각 3씨를 화교위원에 선임.

4.14 :  필라델피아 17가에 있는 리틀극장에서 한인자유대회 개최. 각 지방 대표 150인 참설하여 3일간 진행.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독립 필요성을 알리고 미국 정부에 이를 요청. 16일 서재필을 회장으로 독립관까지 퍼레이드, 독립기념관에서 이승만 독립선언서 낭독 사진촬영

4.17 :  서울에서 13도 대표 국민대회 개최 임시정부 구성

집정관 총재  이승만, 외무총장  박용만, 군무총장  노백린, 노동총장  안창호 선임

4.23 :  멕시코 메리다지방 부인들 대한부인애국회 조직

5.1 :  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 샌프란시스코 상해 도착, 임시정부에서 활동

5.16 :  필라델피아시와 그 부근 백인 인사들 한인친우회 조직. 일인이 한국내에서 학살을 중지할 것과 미국인에게 한국의 독립 필요성 알림. 서재필 동부지역 각처 다니며 조직

5.26 :  샌프란시스코 국민회 중앙총회에서 집계한 독립의연금, 대표의연금, 21조 헌금 등 총액 3만3백89달러

5.27 :  국민회 중앙총회 강영소, 황사용 호놀룰루에 파송, 독립문제 상의

6월초 : 필라델피아 서재필 한국평론 발행

7.17 :  이승만, 워싱턴DC에 대한공화국 임시공사관 설치

7월 : 호놀룰루 국민보 주필 박용만 원동으로 떠남

8.5 :  중가주 다뉴바지방에서 대한인여자애국단 창단, 총단장 김혜원 선임.

8.13 :  집정관 총재 이승만 독립운동비 사용 목적으로 대한민국 공채 발행. 제반업무는 워싱턴DC 구미위원부 담당

8.22 :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되었던 김규식 뉴욕 거쳐 워싱턴 DC 구미위원부 도착

8.30 :  시카고 거주 동포들 시카고 한인감리교회 창립

8.30 :  임시정부 재무총장 최재형 애국금 모금 사무 국민회에 위임.

9.6 :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이승만 대한민국 임시대통령에 선출

9.26 :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주지역 학생대표 전미국한인학생회 연합 조직 결성 합의

10.1 :  호놀룰루 노백린, 워싱턴DC 구미위원부 도착

10.11 :  샌프란시스코 정한경의 노력으로 한인친우회 조직, 참석자 1천명

10.16 :  구미위원부 김규식위원 각 지방 시찰, 샌프란시스코에서 시국강연, 이때 구미위원부와 국민회가 일치하고 공채와 애국금을 함께 실행 할 것을 말함

10.29 :  대한적십자사 사장 이희경 의사 상해로부터 시애틀에 도착, 각 지방 순회 재정 모금 모두 1만 3백달러

11.23 :  하와이 독립의연금 총액 3만5천달러 도달, 2천9백7인 참가

12.29 :  국민회 중앙총회 수입 8만8천달러, 지출은 임시정부와 구미위원부에 3만2천달러, 외교선전비 1만4천달러, 원동 및 유럽대표 경비 8천5백달러, 내지구제금 5백달러, 여행비 1만3천달러, 통신비 2천6백달러

12월말 :  캘리포니아 벼농사가 풍작으로 애국금 수입 4만2천달러 도달

 

1920년

1.1 :  북미 국민회 총회장 강영승 선임, 하와이 국민회 총회장 이종관 선임

1.22 :  지난 해부터 캘리포니아, 워싱턴, 오레곤, 유타, 아이다호에 거주하는 중국인 심방, 독립운동비 모은 홍언 2차로 다시 모금 떠남

2.8 :  가주대학 경제과 졸업 백일규 한국경제사 펴냄

2.20:  북가주 윌로우시에서 흥사단원 김종림, 곽임대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 발기로 한인비행학교 설립.  총재 김종림, 쌍발연습기 2대 구입, 학생 19명 훈련

4.6 :  샌프란시스코 한인학생 총회 결성

4.8 :  하와이 국민회 분규발생, 샌프란시스코 국민회 중앙총회 윤병구 총회장, 조사위원으로 황사용, 정칠래, 정원명, 안원규, 승용한, 이내수, 윤계상 임명. 분규 더욱 확대. 하와이 법정에까지 감. 국민회 엄무 일시 중단

4.21 :  현순, 안현경 상해로부터 뉴욕에 도착. 현순 워싱턴 DC 구미위원부로 출발, 안현경 호놀룰루로 떠남

5월 : 김호, 김형순 중가주에서 김형제상회 설립. 30년간 사업

7.16 :  북가주 윌로스에 비행사 양성소 감독하던 노백린 장군 호놀룰루로 떠남

9.15 :  대한민국 임시정부 미의회 및 정부, 일본 정부, 그리고 각 언론에 독립에 필요한 논설 등 써보냄.

10.3 :  구미위원부 김규식위원장 원동으로 떠남. 현순 목사 위원장 서리 맡음.

11월초 : 이승만, 노백린 호놀룰루 떠나 상해에 도착

11월초 :  북가주 벼농사 몇년간 풍작을 이루었으나 11월 초순 장마로 큰 피해. 이후 다시 재기 못함.

11.12 :  윤병구, 김종림, 홍종만, 정몽룡 발기, 북가주 윌로스 지방에서 연합식산회사 조직, 사장 윤병구, 부사장 겸 재무 김종림

11.18 :  재미한인중 독립의연금 1천달러 이상 낸 김종림, 김승길, 신광희, 임준기 등 4인에게 임시정부 재무부 감사장 수여

11.23 :  북미 국민회 총회장 최진하 선출

11월말 :  구미위원부 결산 발표, 수입 총액 7만 1백달러, 지출 6만5천달러

12월초 :  만주 간도지방 조선인 일병 침략, 학살 1천80명, 가옥 방화 160호, 미주에서 의연금 모아 보냄

12월말 :  미국 인구조사에 미주대륙 한인인구 1천2백24명 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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